딸랑이거하나로제가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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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이거하나로제가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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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가톨릭출판사
상품 무게
400.00g
저자
끊임없는 기도 모임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출간일
2016-09-08
ISBN
979-11-6015-004-9 03230
예상출고일
1일
<머리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1요한 3,1 참조). 예수님께서 날마다 하시는 것처럼 저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고(루카 10,20 참조),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은 모든 화해와 온유의 원천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6년 1월 6일, 청소년을 위한 자비의 희년 담화문에서)

자비의 희년인 2016년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라는 말이 세상에 드러난 지 7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위로부터”(요한 3,3) 새로 태어났습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가는 영혼들의 첫 ‘증언집’이 주님의 이끄심으로 탄생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이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시고, 우리 모든 신자가 ‘새로운 복음화’를 통하여 새로운 신앙인으로 거듭 태어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두 분 교황님께서 ‘신앙의 해’와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신 목적대로 우리가 참으로 새롭게 복음화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생활과 신앙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 된 참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은 누구나 다 그분이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시고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신 한 사건, ‘부활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예수님’을 꼭 만나 뵈어야 하는 것이지요. 지식의 예수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곧 ‘하느님 체험’이며, 하느님 체험이 없는 신앙인이 ‘복음화’되기란 요원합니다.
여기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변화된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새로운 복음화’를 뜻합니다. 내 뜻에 점철된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변화된 새 삶은 일시적이며, 반드시 한계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황님이 ‘신앙의 해’ 개막 미사 강론에서 언급하신 말씀 그대로, 오늘날 ‘복음화’라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증언’하고, 그 증언을 통하여 ‘나아갈 길을 가리켜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 ‘거룩한 내맡김 영성’으로 ‘삶이 곧 신앙생활이요 신앙생활이 곧 삶’인 듯 살아가는 33인의 증언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가는 복음화된 신앙인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성당에서나 생활이 한결같습니다. 
너무도 부족하지만 그들의 ‘솔직한’ 증언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성령의 은사를 증언하는 차원이 아니라, 삶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화된 것임을 가감 없이 고백한 내용들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철부지”(루카 10,21) 어린이처럼 부족한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맡겼더니 주님께서 이끌어 주셨다고 말입니다. 
부족한 이 33인의 ‘증언집’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게 돼 참으로 기쁩니다. 또한 이 책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과 참생명,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에 마음과 정신을 열게 하는’ 빛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멘. 

“오늘날 세상에 특히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정신을 비추는 사람들의 신뢰할 수 있는 증언입니다. 이 증언은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참생명,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에 마음과 정신을 열게 할 수 있습니다.”(<믿음의 문>, 15항)


<본문>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승희 가타리나 / 문정동성당


† 주님께 모든 것을 내맡깁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제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몰랐을 때는 이 물음에 선뜻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도 제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제가 주님을 확실하게 믿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부활 성야 미사 때 주임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너무도 쉬운 질문이었지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저를 보고 스스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확신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제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만나 변화되고 있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신앙을 말할 때 친정엄마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고, 엄마 덕분에 하느님을 배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께 시집온 엄마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집살이를 겪으며 사셨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점쟁이를 많이 의지하며 사셨던 것 같습니다. 견딜 수 없이 힘들 때는 굿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식들을 말할 수 없이 사랑하셨고 애지중지 키우셨지만 엄마의 정성이 무색하게 첫아이, 둘째 아이, 셋째 아이, 넷째 아이가 그것도 차례대로 부모님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때마다 엄마는 또 굿을 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아이를 잃었을 때는 거의 실성할 지경에 이르셨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하느님 곁으로 간 오빠(다섯째)는 저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정말 의젓했고 나이에 맞지 않게 빨리 철이 든 오빠였습니다. 네 명의 아이를 떠나보낸 아픔을 잊고 든든한 맏이(다섯째)를 비롯해 남아 있는 아이들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낙으로 살아갈 때쯤 무심한(?) 하늘은 그 든든한 오빠까지 거둬 가셨습니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돌아온 엄마의 처참한 몰골이라니…. 어린 저의 눈을 통해 기억된 엄마의 그 모습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깎이지 않는 돌에 조각된 형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 저녁 아무것도 모른 채 퇴근길에 기분 좋게 한잔하고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시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붙박이가 되셨습니다.
주님의 오묘하신 신비는 이때부터 발했습니다. 점쟁이를 찾아다니다 실성할 것만 같은 엄마를 살려야 했던 아버지는 종교를 생각하셨습니다.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살피시던 아버지의 마음에 쏙 들어온 종교가 있었으니, 그 이름도 위대한 ‘천주교회!’ 엄마의 실성 위험을 막는 데 적격이라 생각하신 아버지가 엄마 손을 잡고 가까운 성당에 찾아가 입교를 시키신 것입니다. 제가 여섯 살 때쯤으로 기억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 본인은 입교하지 않고 엄마만 하느님 집에 쏙 밀어 넣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먼 훗날 퇴직하고 칠순이 가까워서야 하느님 자녀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하느님 자녀가 된 엄마는 그때부터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오직 ‘예수, 마리아, 요셉’만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한 엄마가 어깨너머로 배운 한글로 성경과 성무일도 기도문을 어찌나 잘 읽으시던지….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성당에 가 지팡이를 옆에 놓고 어렵게 성모님께 큰절을 올리시던 엄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다 잘될 거다. 예수님이 다 해 주실 거다.”
엄마가 항상 제게 하셨던 말씀을 이제는 ‘거룩한 내맡김 영성’으로 변화된 제가 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오빠까지 먼저 떠나보낸 부모님은 여섯째 오빠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셨습니다. 여섯째인 오빠가 원치 않는 장남이 되어 버린 그때부터 우리 집은 오빠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더 이상 자식을 땅에 묻어서는 안 되겠다는 부모님의 의지가 지나친 관심과 사랑으로 표출되어 오빠에게 집중된 것입니다.
집에서 오빠는 거의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다섯 살 위인 오빠에게 높임말을 써야 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뺨을 맞기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것을 부모님께 일러바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빠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오빠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조직 사회에서는 버티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아버지는 문과였던 오빠에게 의대 진학을 권했고, 오빠도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의대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봤지만 낙방의 쓴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재수하게 된 오빠는 이과 쪽 공부를 다시 시작해 무사히 의대에 진학했고, 학교가 있는 대도시로 나가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등록금이 비싼 의대에 보내면서 하숙까지 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빠가 본과에 올라가면서 생겼습니다. 공부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시중을 들어줄 일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저를 올려 보내는 것으로 결론지으셨습니다. 쉽게 말해 저는 ‘식순이’로 낙점된 것입니다. 여섯 살 아래인 남동생까지 딸려서…. 그때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집에서 존재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아이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자식들이 무서워하고 어려워하는 일들만 도맡아 해야 하는 천덕꾸러기로 살았으니까요.
이때부터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해서 오빠와 남동생에게 바치고 뜀박질해 학교에 갔다가 수업 마치고 다시 뜀박질해 돌아와 청소와 밥을 하는 생활을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사실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녔던 여느 자취생들과 별다를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빠의 스트레스는 엉뚱하게도 모두 저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왔습니다. 밥 먹다 갑자기 상을 엎어 버리기도 하고, 이유 없이 뺨을 맞기도 하는 공포의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오빠의 모든 스트레스를 소리 한 번 제대로 질러 보지 못하고 그대로 다 받아 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하루의 절반 이상은 눈물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오빠가 무서우니 모든 남자가 다 무서웠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남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아마 이때부터일 것입니다. 
가장 예민한 사춘기에 겪어야 했던 사건들은 저를 더욱 비관적인 아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에게 하느님은 없었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발악을 했습니다. 
성인이 돼 직장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겼으니 도망치듯 결혼이라는 것을 해 버렸습니다. 오빠와 부딪히지 않아도 되는 피신의 방편으로 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빠는 결혼해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해서 불편했던 사람을 보지 않으니 살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하느님을 믿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개신교 신자였던 남편은 엄마의 권유로 개종해 우리는 같은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또한 주님의 이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저는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 나도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착하지만 한편으론 무심한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만, 결국 최대 피해자는 남편이라는 사실을 주님께 내맡기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신앙생활은 계속됐습니다. 친정엄마의 영향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신앙생활을 이어 오던 저는, 2011년 2월이 저물어 가던 무렵 본당으로 부임해 오신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신부님의 낮은 목소리를 통해 접하게 된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 참 새로웠습니다. 강론 때마다 같은 말씀만 되풀이하시는 것 같은데, 그 안에 진리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마리아처럼-거룩한 내맡김 카페’에 가입해 신부님이 병을 얻어 지리산으로 들어가 쓰셨다는 ‘거룩한 내맡김 영성’과 ‘내맡긴 영혼은’을 읽으며 주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우리를 위해 다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해 드리는 길은 나의 모든 것을 그분께 내맡겨 드리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 드리는 일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 갔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다. 아낌없이 내놓으셨다. 거저 내놓으셨다. 우리를 창조하신 우리의 주인님께서 말이다! 그분이 먼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분을 믿고 더욱 사랑해야 한다. 아주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이해욱 신부, ‘거룩한 내맡김 영성’, - 17.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려면? 중에서)

그리고 한 달 후 급기야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식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무엇에 홀린 듯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휩쓸리듯 그렇게 봉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 꽉 들어찬 교만이 쉽게 내맡김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도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렇잖아도 어두운 저의 인상은 아예 새까맣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제 안의 저와 싸우고 있을 무렵 커다란 시련이 우리 부부에게 덮쳐 왔습니다. 

2011년 9월 15일! 전국에 정전 대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그날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예비 신자들을 위한 봉사자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무슨 영화를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온 나라가 정전으로 캄캄해졌었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휴대 전화를 열어 보니 큰딸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십여 통 넘게 와 있었습니다. “엄마, 어디야?” 평소에 전화나 문자를 하는 일이 거의 없는 딸인데 문자까지 와 있었습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제가 수돗물을 잠그지 않고 나가는 바람에 싱크대에서는 계속 물이 흘러넘쳤고, 온 나라를 캄캄한 어둠으로 몰아넣은 정전 사태에 아빠가 관련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엄습해 오는 두려움으로 한동안 선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 안에 평화의 기운이 돌면서 주님께 ‘내맡기는 화살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에 제가 놀라 주님께 얼마나 많은 감사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저의 모습은 확실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순간에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남편은 사태를 수습하고 정부에서 나오는 공직자들에게 불려 다니느라 정신없는데, 저는 성당 십자가 아래에서 눈을 감고 수도 없이 ‘내맡김의 화살기도’만 바쳤습니다.
제 안에는 평화가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뒤통수를 너무도 강하게 얻어맞아 감각을 잃어버렸지만, 덕분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일어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며 내맡겨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즈음은 남편이 너무 미워 계속 같이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도무지 당신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않는 저를 주님은 그렇게 불러 주셨습니다.

벌써 4년 전의 일입니다. 남편은 엄청난 일을 온몸으로 받아 안고 결국 사직까지 해야 했습니다. 한동안 대인 기피증으로 부모 형제들의 전화도 받지 않고 집 안에만 틀어 박혀 지내던 남편도 지금은 안정을 찾아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 동해에 머물며 일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제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몰랐다면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정신과를 들락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심함이 지나쳐 모든 고민을 혼자 떠안고 사는 것처럼 전전긍긍하던 제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알아 이렇게 변해 가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도 땅만 보고 다녔던 제가 이제는 하늘을 봅니다. 하늘색에 취해 정신이 아득할 때도 있습니다. 저녁노을만 좋아했던 제가 뜨는 해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해를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뜨겁게 사랑합니다. 아멘!

주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셨으면 누가 명령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명령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가?(애가 3,37-38) 

일어나는 모든 일에 주님의 뜻이 있으심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사무치게 고마워 갑자기 쏟아지는 울음을 달게 받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받아 주소서.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오니 당신 뜻대로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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