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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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저자
송현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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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면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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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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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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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상품코드 120061
판형 148*210 상품 무게 0.00g
ISBN 978-89-321-1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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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 #엠마로오가는 #엠마오로가는길에서 #길에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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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감긴 우리 신앙의 눈을 활짝 열어주는 책!

‘엠마오로 가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걸으셨지만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루카 24,13-16).
이 두 제자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지만 일상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늘 한번 바라볼 틈 없이 세상일에만 파묻혀 사느라 주님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성당만 단순히 오고갈 뿐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미주 평화신문에 연재되어, 그곳 가톨릭 신자들에게 신앙의 지침이 되어준 ‘송현 신부의 엠마오로 가는 길’을 모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신앙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명료한 해설은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를 깨우쳐줄 뿐만 아니라 지혜롭게 신앙생활을 가꾸어가는 방법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특히 153편에 달하는 동서고금을 망라한 감동과 교훈이 담긴 예화는 자연스럽게 말씀이 우리 안에 스며들도록 해준다.

특별히 이 산책길에는 실존 인물의 삶이나 사건, 혹은 교훈적인 이야기 등이 소재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것은 딱딱한 신학적 논리나 복잡한 성경 해설 등으로 야기될 중압감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산책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등장인물의 가르침이나 삶의 교훈 등은 신앙의 길에서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서문 중에서

엠마오의 여정 속에 투영된 우리의 신앙, 그 깨달음

저자는 153편의 이야기를 6장으로 나누어 우리의 신앙을 엠마오 여정에 비유하여 정리하고 있다. 마치 성경 말씀이 살아서 우리 자신을 비추고, 변화될 우리의 신앙을 예시해주는 듯하다.

‘예수님께서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제1장), ‘눈이 가려져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제2장),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제3장),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그렇게도 믿기 어려우냐’(제4장) ‘그제서야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제5장), ‘우리가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제6장)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자는 목숨을 잃을 것이요,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히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이를 온몸으로 실천한 ‘콜베 신부’의 예화는 세례성사를 통해 세상과 육체와 자신에 대해 죽기로 약속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일깨운다.
‘완두콩을 따라 순순히 도살장으로 가는 돼지’ 예화는 아무리 작은 죄일지라도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큰 죄악에 빠지게 되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이끌어 준다. ‘물이 잘 스며들도록 단단한 흙덩이를 깸’에 대한 예화는 우리의 삶도 깨지고 부서져야만 온전히 하느님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깨어짐의 영성을 일깨운다.
‘코터네 집의 토요일 밤’ 예화는 예수님을 모시는 성가정이야말로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임을 깨우쳐주고, ‘의심 없이 배추를 거꾸로 심는 수도자’ 예화는 신앙이 교리나 이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일임을 일깨운다.

이처럼 다양한 예화를 통해 여러 각도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조명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한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루카 24,27)을 얘기해주듯, 우리의 현실을 통찰한, 예화와 신앙 해설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바로 보고 반성하게 한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풍요롭게 일구어나가는 힘을 준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서 훈화 말씀으로 쓰거나, 구역모임이나 소공동체 모임 안에서 신앙 나눔의 주제로 삼는다면 신앙생활의 기쁨과 은총이 더 커질 뿐만 아니라 좀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교회 공동체의 신자 재교육 용 혹은 꾸르실료 교육으로 열성에 탄 신앙인들은 그 열정을 오래 간직하기 위한 책으로도 꼭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

여백의 미를 잘 살린 동양화풍의 삽화는 각각의 이야기를 채색하듯 선명하게 잘 표현해주고 있다. 또한 이미 평화신문에서 저자의 글을 만난 미주 독자들의 애정이 담긴 사연들과 이 책의 주제곡이 담긴 악보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와의 만남을 더욱 특별하게, 그리고 정감 있게 긴 여운을 남긴다.

예수님이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그들에게 주시자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처럼 우리 역시 생명의 빵인 성체성사와 그분의 말씀으로 눈이 열려 예수님을 만나는 뜨거운 영광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그 옛날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의 감동이 오늘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설명해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카 24,32)



본문 중에서

효성 지극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법을 어긴 자에게 매우 엄격했습니다. 하루는 공교롭게도 그의 어머니가 법을 어겨 사십 대의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이를 두고 백성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왕이 어머니를 벌하지 않으면 앞으로 백성들이 법을 지키겠는가?” “아니지, 효자인 왕이 어떻게 어머니를 벌하겠나?” 온 백성의 관심 속에 왕은 어머니를 나무에 붙들어매도록 했습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왕이 갑자기 곤룡포를 벗어던지고 어머니께 달려들었습니다. 어머니를 뒤에서 껴안고서 명했습니다. “여봐라, 이 죄인을 사정없이 치도록 하여라!” 신하들은 차마 왕을 향해 매를 들지 못했습니다. 왕이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엇들 하는 게냐? 어서 치도록 하여라!” 더 이상 어명을 거역할 수 없어 그들은 왕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은 “왕은 법을 지키는 동시에 효성 또한 잃지 않았구나!” 하면서 왕을 존경해 마지않았습니다.
왕의 모습은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하느님은 죄로 인해 멸망의 길로 들어선 인간을 보다 못해 스스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이끌고자 직접 세상에 뛰어드셨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신 채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보속(補贖)하셨습니다. 암브로시오(Ambrotius) 성인의 말처럼, 주님은 그 육신 안에 모든 이들의 죄를 못 박으셨고 그 피로써 모든 이들이 받을 죽음의 선고를 폐기 처분하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확연히 증명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효성 지극한 왕의 모습처럼 하느님의 이러한 모습은 수치와 모욕이 아니라 도리어 영광과 권능을 드러냈습니다.
유사 이래 모든 종교들은 각각 절대적 존재인 신(神)을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신이 인간이 된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입니다. 유독 하느님만이 인간을 사랑하신 나머지 스스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다른 신들은 언제나 저 높은 곳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과 법규만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지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더 이상 종으로 취급하지 않고 벗으로 삼아주셨습니다(요한 15,15).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유일한 과제는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만일 그분께 똑같은 사랑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단순히 지배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리는 꼴이 될 것입니다.
(“어서 치도록 하여라!” 42-43쪽)



하와이의 외딴 섬 몰로카이(Molokai)에는 세상에서 버려진 나환자들이 살았습니다. 1873년 33세의 젊은 사제였던 다미안(V. Damien; 1840-1889)은 그들을 돌볼 결심을 하고 몰로카이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들은 다미안 신부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문둥이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어? 단지 알량한 동정이거나 체면치레겠지!’ 다미안 신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좀체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다미안 신부가 발을 씻으려고 대야에 두 발을 넣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있는데 시중들던 사람이 외쳤습니다. “신부님, 그 물은 펄펄 끓는 물인데요?” 다미안 신부는 자기 손과 발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더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 날 그의 미사 강론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제야 당신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손과 발을 보십시오! 저도 이제 문둥이입니다.” 일순간 나환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처지에 직접 동참하여 함께 삶을 나누며 그와 하나되는 일입니다. 나환자를 사랑해서 스스로 나환자가 된 성자 다미안 신부. 그는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인간과 똑같아지셨던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예수님의 존재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 구원을 위해 인간의 죄를 한몸에 받아 안고서 십자가 위에서 무참히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찬란한 부활을 통해 죄악에 대한 사랑의 승전보를 힘차게 울리셨습니다. 이 모든 예수님의 역사는 한마디로 ‘사랑의 시나리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약함과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셨던 분, 마침내 인간의 죽음까지도 함께 받으신 예수님은 참으로 인간과 하나 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그토록 인간을 닮고자 하셨기에 이제 우리도 감히 그분을 닮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설명처럼 ‘인간을 신(神)이 되게 하시고자 신(神)이 인간이 되어 오신 사건’이 이천 년 전에 벌어졌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닮아 세상에 오셨듯이 인간도 하느님을 닮아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분을 닮아 거룩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그분을 따라 숭고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또 한편의 아름다운 ‘사랑의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펄펄 끓는 물인데요?” 228-229쪽)
- 서문 중에서



저자와 서면 인터뷰

다음은 저자와 서면 인터뷰 내용입니다. 기사를 풍부하게 쓰실 수 있도록 저자 개인에 대한
질문들도 많이 하였으나, 다음의 답신과 함께 그에 대한 내용은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시점에서는 책과 그 내용에만 집중하고 몰입하는 차원에서라도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항들에 대한 인터뷰는 일단 자제하면서 유보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미사 강론을 통해 신자들의 마음과 시선을 하느님께로 다가서도록 하지 않고 도리어 사제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드는 주객전도의 오류와도 유사한 그런 성격의 상황이나 느낌을 배제하려는 궁여지책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1) 미주판 <평화신문>에 ‘송현 신부의 엠마오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150회 이상 글을 연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꼭지 제목(‘송현 신부의 엠마오로 가는 길’)은 누가 어떤 의도로 지었나요?
① 누가? : ▶ 저자
② 어떤 의도? : ▶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2) 이 글들을 단행본으로 묶으시면서 원 제목에 ‘~에서’라는 조사를 넣으셨는데, 그렇게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 제가 의도한 원 제목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였습니다. ‘신문지면’이라는 상황을 고려하여 평화신문사 측과의 조율로 “송현 신부의 엠마오로 가는 길”로 조정해서 집필을 시작했던 것이지요.

3) 목차를 보면 제1장부터 제6장까지 엠마오의 여정을 따라서 분류해 놓으셨는데, 처음부터 그 여정을 생각하며 집필을 하신 건가요? 아니면 모두 집필한 후 주제에 따라 배치한 건가요?
▶ 집필 기간이나 책 출판에 대해 제가 처음부터 계획한 바는 전혀 없었지요. 신문사 측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채 계속 응하다 보니 너무 멀리 가버린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장의 설정은 애초 의도한 것도 아니요 주제에 따라 분류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연재 순서에 따라서 엠마오의 여정을 함께 배치해 보았습니다.

4) 모든 글마다 하나씩 예화를 넣으셨는데, 덕분에 독자들은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화들을 다 모으시려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이토록 많은 예화들을 어디서 어떻게 다 모으셨나요?
▶ 학생 시절부터 폭넓은 독서를 하면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를 해오고 있습니다. 곧 좋은 구절이나 예화가 있으면 별도의 ‘독서 노트’에 옮겨 적는데, 그 노트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5) 이 책을 통해 신부님께서 독자들에게 가장 강조하여 말씀하시고자 하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 인간은 누구나 일평생 다양한 형태의 목마름에 시달리며 살아가지요. 그런데 그 갈증은 이 세상이 제공하는 ‘탄산음료’로는 결코 해소될 수 없다는 사실, 오로지 ‘예수님의 생명수’에 의해서만 해갈된다는 복음 정신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6) 집필을 하시면서 예화 선택의 기준이 별도로 있었는지요?
▶ 최우선적인 선택 기준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제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선택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조차 감동을 주지 못하는 예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공허한 지면의 허비에 불과하다는 신념 때문이지요.

7) 집필을 하시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 매주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한 시간적인 압박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는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미 정리가 다 되었는데도, 그에 연결시킬만한 적당한 예화를 찾지 못했을 때, 그때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죠.
목차

차례

 

추천사: 엠마오 여정의 감동과 기쁨(故 정명조 주교)

추천사: I have no hesitation(Most Rev. A.F. Tonnos D.D.)

서문: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1장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란히 걸어가셨다”(루카 24,15)

내가 대신해서 죽겠소!/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뉘 우치고 다시 왔습니다!/ 몇 알씩 흘려주지요!/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버릴 줄 알았던 자/ 등대라 부른다네!/ 저것이 성인(聖人)인가?/ 삐뚤어질 수가 없지!/ 어서 나가거라!/ 여관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어서 치도록 하여라!/ 그토록 무서웠던가?/ 왜 밭을 갈고 있습니까?/ 그래, 자네 왔는가?/ 모조리 내게 넘겨라!/ 장애인이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꼭 만나고 싶습니다!/ 윷판의 의미/ 씨앗만을 팝니다!/ 깨어짐의 영성/ 그 아이의 엄마입니다!/ 내가 알지 못한 예수님/ 어릿광대 춤밖에 없습니다!/ 쓰레기통처럼 보였소!

 

제2장 “눈이 가려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였다”(루카 24,16)

돌을 씻어오게나!/ 더 짧게 만드시오!/ 힘들어 죽겠는데 왜?/ 여전히 가난한 인간이다!/ 오로지 폐하의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 나를 길들인 것 같아!/ 더 참된 사실은 없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마음속에 숨겨둡시다!/ 죽어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때의 아들이 보고 싶어요!/ 코터네 집의 토요일 밤/ 하느님이 가르쳐주셨네!/ 커다란 손/ 어찌 불가능하겠습니까?/ 그다음엔 어떻게 될까?/ 톱으로 자른 십자가/ 하느님이 해주셨습니다!/ 내가 세상의 왕이야!/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가식서가숙/ 요리를 먹기 바란다!/ 생각만 할 뿐이다!

 

제3장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루카 24,21)

왜 모자를 벗지 않으세요?/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우연히 생겨날 수 있겠나?/ 그리스도의 몸을 만졌어요!/ 세이레네스와 오르페우스/ 5분 후에 어디로 갈까?/ 누가 가장 행복합니까?/ 일주일을 버티기 어렵죠!/ 배추를 거꾸로 심으시오!/ 기억나는 강론이 없소!/ 저만 쩔쩔맸단 말입니까?/ 예술가의 마음이지요!/ 크레도(Credo)/ 잡고 있는 나무를 놓아라!/ 아무것도 못 보았습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땅을 드립니다!/ 저는 못 갑니다!/ 지팡이를 받으십시오!/ 무엇을 잃는단 말입니까?/ 너와 함께 잔 예수다!/ 궁전처럼 변했습니다!/ 산불에 포위된 자/ 가야지, 가고 말고!/ 일정대로 미사를 드립시다!

 

제4장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루카 24,25)

하느님, 어찌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야 해!/ 칼을 잘 갈아주세요!/ 아직도 하느님을 믿습니까?/ 이 사람을 데리고 갑시다!/ 내 인생 내가 책임질게!/ 어떻게 생포하나요?/ 벤허/ 내리막길에서 만났다!/ 하느님 손에 매여 있소!/ 그가 어떻게 갔습니까?/ 희망을 닦고 있답니다!/ 의심나는 사람은 가시오!/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나그네를 위한 편지/ 자루 안의 모래와 같네!/ 그거면 충분하지 않소?/ 기적의 십자가/ 딴 사람이 될 걸세!/ 진리 조각을 발견했어!/ 가장 큰 진리는 무엇이죠?/ 이 나무를 뽑아보게!/ 발 없는 사람을 만났다!/ 공동묘지로 만들겠다!/ 동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제5장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1)

펄펄 끓는 물인데요?/ 당신처럼 살고 싶소!/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네!/ 사랑의 말(馬)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이 구세주가 될 것이오!/ 네 죄를 잊었노라!/ 이슬과 같습니다!/ 복음이 무엇을 했소?/ 굽히는 법을 잊었네!/ 가장 귀한 것을 바치노라!/ 나를 따라라!/ 이제 여섯 시간밖에 없구나!/ 왜 놀러오지 않으세요?/ 건너가리라 믿습니까?/ 이 재산이 무슨 의미인가?/ 제 생명을 드리죠!/ 주님 이름을 믿고 나왔다!/ 왜 가게 문을 닫습니까?/ 항공료는 있나요?/ 전 언제 죽나요?/ 성모님의 장례식/ 지금도 살아 계십니까?/ 그 무대가 그립지 않니?

 

제6장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카 24,32)

태양을 쳐다보시오!/ 기도의 결과입니다!/ 예수님보다 위대합니까?/ 나무가 내 스승이었네!/ 내 옷을 입으시오!/ 바닷물을 옮길 거예요!/ 나르키소스의 죽음/ 성냥이 얼마나 필요한가?/ 왜 마리아를 섬기죠?/ 엄마는 빚이 있어요!/ 기적을 본 사람 있소?/ 영원히 함께할걸세!/ 머리가 이상한 것 아냐?/ 공동묘지에 들어가게나!/ 미련한 여인이여!/ 빈 무덤밖에 없지요?/ 내 힘으론 어쩔 수 없어!/ 배에 불을 질러라!/ 바람의 존재를 어떻게 아느냐?/ 저를 죽일 순 없습니다!/ 텐트에 걸린 손수건/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우리는 바보들이죠!/ 단 한 명도 없었다!/ 죄의 무게는 얼마죠?/ 왕관을 벗어던진 왕/ 셔츠만을 갖고 갔다!/ 하루만 했을 뿐입니다!

 

저자 후기: 날개 달아주기/ 미주 독자들이 전한 사연/ 주제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저자 소개
지은이 : 송현

저자 : 송현(로마노) 신부

2000년에 사제품을 받은 부산교구 사제로, 미국 유학과 캐나다 교포사목 등을 거쳐 현재 로마에서 유학 중이며 2005년부터는 벨기에 ‘바뇌(Banneux) 성모성지’ 국제지도신부로 활동해오고 있다. 교계(敎界) 내에서 광주가톨릭대학교 ‘대건문학상’(1995년), 부산 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1996년, 1997년), 서울 대교구 ‘환경상 공모’(1997년) 등에서 입상했으며, 한국천주교회 ‘2000년 대희년 주제가’(1999년)를 작사한 바 있다.

 

삽화가 : 하삼두(스테파노) 화백

동아대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하였고, 현재 부산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부산교구 주보인 「가톨릭 부산」과 월간 「사목」에 그림 칼럼을 연재 중이다. 부산대, 동아대, 동의대에서 동양화를 지도했으며 부산교구 좌동성당을 비롯하여 일곱 곳의 교회 관련 시설에 성미술 관련 작품을 남겼다. 9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명상 그림집 「지금 여기」(2004년)를 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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