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머니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내가 묵주 기도를 하고 있는데 묵주알마다 빼곡히 장미꽃이 붙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장미꽃을 떼려고 무척 애를 쓰는데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눈을 떴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묵주알이 장미꽃으로 변한 것에 대해서 신기해하셨고 그 의미를 궁금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이렇게 대답해 드렸습니다. “엄마, 묵주는 장미를 뜻하는 말이에요. 묵주 기도를 한다는 것은 곧 성모님께 영적 장미꽃을 바친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엄마가 성모님께 묵주 기도를 정성껏 바치셨기에 성모님이 기쁨의 선물로 장미를 환시로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요?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니는 제 말을 듣고서 기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성모님께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치고 계셨습니다. 모든 사제들의 어머니가 그러하듯이.
제가 신학생 때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날 즉시 입원하여 일주일 동안 검사를 받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어머니께서는 제 곁에서 끊임없이 묵주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1주일이 지난 뒤 담당의사가 환히 웃는 모습으로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기하네요. 급성 백혈병이 없어졌어요. 정상이니 퇴원해도 됩니다.” 어머니의 묵주 기도가 저를 치유하게 한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를 전구해 주신 성모님께는 크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저는 성모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학생들은 매일 저녁기도 전 묵주 기도를 5단씩 바칩니다. 대부분은 삼삼오오 혹은 그 이상씩 무리를 지어서 운동장을 걸으면서 소리내어 묵주 기도를 합송합니다. 그렇게 신학교 7년을 지내다 사제가 되는 것입니다. 7년 동안 매일 묵주 기도를 바쳤다면 성모님과의 관계가 매우 친밀해졌겠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저는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사제가 된 지 4년쯤 되었을 때 ‘사랑이 피는 기도 모임’ 회장인 이유경 마리안나 자매가 저에게 『묵주의 9일 기도』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신부님, 앞으로 이 9일 기도 책으로 기도를 하시면 성모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하게 될 거예요.” 이 마리안나 회장은 묵주 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을 체험했고 그럼으로써 오랜 냉담에서 벗어나 주님을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된 분입니다.
아마도 저와 성모님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선물로 받은 9일 기도 책으로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매일, 9일 기도를 하면서 저는 5단에서 10단, 10단에서 15단, 15단에서 30단, 30단에서 45단, 나중엔 그 이상으로 묵주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성모님이 저의 어머니이심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제 생활을 하면서 성모님의 보호와 위로 그리고 은총을 받은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성체성사의 중요성과 성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저는 티 없으신 성모 성심께 저를 봉헌하고 묵주 기도 15단 또는 20단을 바칩니다. 하루를 성모님과 함께 시작하는 셈이니 저의 하루는 즐겁고 또 평안합니다. 성모님께 저를 봉헌하였으니 성모님께서 저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힘 있는 누군가가 제 곁에 항상 함께하신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든든하고 또 얼마나 큰 용기를 얻게 되는지요!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은 말하기를 “예수께로 나아가는 이 즐거운 길을 걸어간 성인들은 아주 적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성실한 배우자이신 성령께서 각별한 은총으로 그들에게 그 길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 성인들은 성 에프렘, 성 요한 다마세노, 성 베르나르도, 성 베르나르디노, 성 보나벤투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등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성인들은 성모께 대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나 성성(聖性)에 이르렀다. 그들은 더 거칠고 위험한 시련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즉 루도비코 성인은 마리아의 길을 걷는 영혼은 그 길을 걷지 않는 영혼보다 더 빠르고 쉽게, 더 안전하고 확실하게, 더 완전하고 가치 있게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인의 이 말에 완전히 동감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저처럼 나약한 사제가 사제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영적 욕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영적으로 최고의 힘을 지니고 있는 묵주 기도를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자. 성모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보고 맛들이게 도와주자.”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입니다.
저는 현재 사회교정사목을 담당하고 있는데 주로 구치소와 교도소의 재소자를 만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손에는 묵주(1단 묵주)가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묵주가 없는 사람들은 저에게 묵주를 달라고 늘 요청합니다. 아마도 묵주를 가장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은 수감되어 있는 그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들에게 묵주는 수감생활을 견디게 해 주는 큰 의지처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했지만 묵주 기도를 하지 않던 형제(사형수, 일명 최고수)가 지금은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친다고 말할 때 저는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형제가 영적으로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들 수형자에게 묵주 기도가 얼마나 큰 은총의 기도인지를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 그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습니다.
올해는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성모님의 요청에 응답하는 신자들이 더욱 늘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저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 이 마리안나 회장께 감사드리며 이 책을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2017년 8월 31일
김석원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