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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일상 안에서 하느님 현존을 깨닫는 것

josee79 (IP: 211.227.119.**) 2024.04.28 14:36:46 조회수 31
기적은 존재한다 판매금액 16,000원

영화 <루르드>를 보면 한 번의 루르드 방문으로 치유의 은사를 체험한 크리스틴을 향한 분노와 질투를 주체하지 못해 한 신자가 신부님께 힐난하듯 따져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숱한 세월 고통으로 신음하며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온 우리에겐 왜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나요? 주님께선 대체 뭘 하고 계신 거죠?” 신부님은 별다른 동요 없이 대답한다. “그분께선 자유 그 자체로 존재하십니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존재하는 동시에 사소한 순간마다 은총의 숨결로 살아계시는 분이지요.” 다소 선문답처럼 느껴지던 신부님의 대사를 시간 날 때마다 곱씹으며 신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내게 한 권의 책이 찾아왔다. 42년 째 좌골 신경통으로 투병하며 힘겹게 수도자의 길을 살아왔던 베르나테트 모리오 수녀가 루르드에서 체험한 치유의 은총이 고스란히 담긴 <기적은 존재한다>를 통해 나는 십 년이 넘도록 매달려왔던 신앙적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가난하지만 신앙심 깊은 부모님 곁에서 성장했던 저자는 루르드 발현의 목격자 베르나테트를 수호성인으로 정하고 11세의 나이로 수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성모님에 대한 각별한 공경과 사랑을 마음에 품고 떠난 길이었지만 그 여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28세 무렵 찾아온 좌골 신경통으로 그녀는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연명해야 했고 가족들의 급작스런 사망까지 마주하며 삶의 의욕이 저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큰 물고기 배 속에서 3일을 버텼던 요나처럼(p.21)그녀의 삶은 어둠에 갇혀 있었으나 오직 믿음만으로 살아왔던 그녀를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셨다. 한 줄기 빛으로 찾아온 기적, 루르드 순례를 통해 그녀는 치유의 은총을 경험했고 오랜 세월 그녀의 삶을 좀먹었던 병마를 떨쳐내게 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극복하고 세상과 마주한 요나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교구와 의료국의 철저한 검증 끝에 2018년 2월 11일 베르나테트 수녀는 70번째 기적의 치유자로 공식 인정받게 된다. 교구와 장상 수녀에게 강요받았던 침묵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오랫동안 곱씹었던 의문이 내 안에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매해 수많은 인파가 루르드 성지를 방문하고 있고, 치유를 향한 간절한 열망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바치고 있는데 어째서 기적은 그토록 가뭄에 콩 나듯 간헐적으로 발생하며, 하루하루 고통스런 삶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기도는 쉽게 묻히고 마는지, 결국 치유의 은총은 특별한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닌가? 라는 내 의문에 이 책은 명징한 답으로 응수한다. 

 

기적에는 자격이 없으며 특권 의식의 상징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오랜 지병, 좌골 신경통은 하느님 계획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아픈 사람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공유하며 하느님의 은총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하느님은 결코 강자, 권력자, 슈퍼맨 같은 이를 선택하시지 않는다는 것.(p.199) 나자렛의 평범한 소녀였던 성모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를 잉태하셨듯, 은총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이며(p.199) 하느님 현존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떨쳐내라고, 한 줄기라도 빛은 존재하며(p.177) 우리의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고 그 안에서 일상의 신비를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걸, 우리 자체가 본질이라는 사실(p.178)매 순간 복기하며 살아갈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루르드 기적을 떠나 삶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더라도 소소한 일상에서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베르나데트 수녀는 말한다. 베르나데트 수녀처럼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지는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에 급급해 본질을 보지 못했던 나는 항상 하느님을 원망했고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내 삶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고립과 방황을 반복했다. 그분께서 내 안에 심어두신 씨앗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눈 먼 시간들을 돌아보며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삶을 성모님과 함께 묵상하고 걸어갈 것을...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요한 3,8) 바람의 방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분의 계획은 가끔 혼란과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섭리 앞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셨던 성모님처럼(p.200), 나도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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