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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가톨릭출판사
상품 무게
1300.00g
저자
소순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출간일
2010-05-20
판형/면수
188*257/반양장/627면
예상출고일
1일

* <성경 공부 해설서>는 가해, 나해, 다해 각각 2권씩 전례력별로 출간되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키워드를 검색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위일체 대축일〔다해〕


입문

삼위일체 교의(dogma of the Trinity)가 항상 분명하게 정의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Holy Scripture)에 나타나지 않는다[‘교황’, ‘연옥(Purgatory)’, 혹은 ‘가톨릭’ 등의 단어들도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데 이런 점에 대하여 우리의 근본주의적 성향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재빨리 지적할 것이다]. 사도들의 시대에 이 교리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도 심지어 분명하지 않다. 그리스도교의 첫 세기를 통하여, 교회는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에 있어 성장하였다. 삼위일체에 대한 교회의 믿음의 가장 오래된 교리적 명확한 표현(doctrinal formulation)은 사도 신경(Apostle's Creed)에서인데, 이것은, 고대 로마의 세례식 신조(symbol, 信條)의 양식으로서, 교리 교육의 기초 역할을 하였고 또 2세기 이후부터는 세례식 신앙고백(confession)의 역할을 하였다.

초기의 교회 시절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유일성 신비와 하느님의 삼위일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성삼위의 위격(persons)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 ‘삼위일체(성삼위, Trinity)’(그리스어: trias) 용어의 사용은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스(Theophilus of Antioch)의 저술들에서 2세기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성삼위의 위격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초기의 시절에 많은 오류를 낳게 되었으며, 이들 위격들 간의 관계들을 설명하려고 하였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단(heresy)으로 끝이 났다. 심지어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와 오리제네스(Origen)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도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하는 자신들의 시도에 있어 더듬거리다 오류에 빠졌다. 아리우스(Arius)는, 기원후 300년경에,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the Word(logos)]이 모든 다른 창조를 위한 정밀한 도구(instrument)가 되고자 성부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거룩한 말씀, 즉 성자이신 하느님(God the Son)께서는, 아리우스에게 있어 하나의 완벽한 창조물(perfect creature)이셨으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의 창조물일 뿐이었다. 만약에 아리우스의 설명이 참이라면, 단지 성부만이 참 하느님일 것이므로, 성자와 성령은 오로지 성부에 의한 채택(adoption)을 통하여 거룩하게 될 뿐일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있어, 가장 거룩하시고 분리할 수 없는 성삼위(the Most Holy and Undivided Trinity)는, 상호 동등하고(co-equal) 또 상호 영원한(co-eternal), 그리고 이들이 함께 한 분이시고 참 하느님이신, 세 위격들 간의 통공(communion, 하나 됨, 친교)이 아니라, 단지 성부께서 당신의 은총을 성자와 성령께 베푸시는 하향의 계층구조(descending hierarchy)가 되어버릴 것이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the First Council of Necaea, 325년)는 아리우스주의 이단에 대하여 대답하기 위하여 소집되었으며 이 공의회는 성자께서 성부와 ‘동질(consubstantiality of the Son with the Father)’이심을 분명하게 확언하였다(stated).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the 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 381년)는 성령께서 성부 및 성자과 함께 흠숭되어야(adored) 하며 그리고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고 확인하였다(affirmed).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거의 500여년 이후인 7세기 말에 최종적으로 완전히 사라졌으나, 그러나 아리우스주의는 여호와의 증인(the Jehovah's Witnesses)들 및 모르몬 교도(the Mormons)들의 가르침 안에서 재개되고 있다(revived).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the Second Council of Constantinople, 553년)에 이르러 비로소 삼위일체 교의는 분명하게 명확히 진술되었으며 그리고 이 교의의 기술적 표현이 확정되었다.

우리가 니케아 신경(Nicene Creed)이라고 부르는 신경(信經, 신앙고백)은, 기원후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ea)에서 비롯하였으며 그리고 381년에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의하여 더욱 더 상세히 설명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기원후 589년에 지역 공의회인 제3차 톨레도 공의회(Council of Toledo)에 의하여 서방 전례(western liturgy)에 처음으로 도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본문(text)은 그리스어 원문의 라틴어 번역문이었는데, 이후에 주된 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은 추가 표현, 즉 성령께서, 단지 성부로부터 대신에,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하신다(proceeds)’는 표현을 포함하였다. 이 문제가 가톨릭 및 개신교(Protestant) 그리스도인들을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계속하여 갈라놓고 있다.
이 축일은 4세기 초에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한 반박에서 비롯되었다. 이 축일은 오랜 역사 과정을 거쳐 800년경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나 로마 전례력에 들어온 것은 14세기 요한 22세 교황 때였으며, 이때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제1독서 - 잠언 8,22-31

지혜에 대한 개념은 정의하기 어려운데(elusive) 이는 이것이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지혜는, 아론의 제의(Aaron's vestments)들을 만들었던(탈출기 28,3) 자들이 갖추고 있던(possessed by), 혹은, 모세의 성막(Mosaic tabernacle)을 건립하였던(탈출기 31,3-5; 36,1) 목수들이 갖추고 있던, 공예가의 일솜씨를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은 직업적인 곡꾼들(professional mourners)(예레미야 9,17) 혹은 선원(시편 107,28)의 능력을 나타낸다. 현자(sage)는 임금들에 대한 조언자(예레미야 50,35; 잠언 31,1)이지만 그러나 또한 기민한 늙은 여인을 말한다(2사무엘 20,16). 지혜는 또한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잠언 1,7; 집회서 1,9-10) 열정적인 신앙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오늘 우리는 지혜가 (거룩한) 하느님으로부터이며 그리고 가시적인 우주보다 전적으로 앞선다고 [즉 선재(先在)한다고(preexistent)] 묘사되고 있음을 듣는다. 이 우선권은 창조된 모든 것들보다 우수함을 뜻한다.

[하느님의 지혜가 이렇게 말하였다:] 22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qana라는 동사는 일반적으로 ‘획득하다(to acquire)’를 뜻하며, 여기서 그 함축된 의미는 출생을 통한 습득(acquisition by way of birth)이다. ‘주님께서 나를 지으셨다’라는 표현은 아리우스파(the Arians)들과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하였는데, 그들은 이 본문을 창조된 로고스(the created Logos)를 지지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23 나는 한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히브리어는 영원(eternity)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가 없었으나, [여기서 ‘영원에서부터(from of old)’로 번역이 된] olam은 무기한의 기간(indefinite period of time)을 나타낸다.

모습이 갖추어졌다.

이것은 탄생에 대한 묘사이다.

24 심연이 생기기 전에, 물 많은 샘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5 산들이 자리 잡기 전에, 언덕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태어났다. 26 그분께서 땅과 들을, 누리의 첫 흙을 만드시기 전이다. 27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28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29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30 나는 그분 곁에서

지혜는 모든 창조를 목격하였기에 이들의 비밀들을 알게 되었다. 

사랑받는 아이였다.

여기서 ‘사랑받는 아이’로 번역한 표현을 NAB에서는 ‘craftsman’으로 번역하였다. Amon은 ‘공예사(craftsman)’ 혹은 ‘어린 아이(little child)’이다. 어린 아이는 한처음의 출생 묘사에 적합하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31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제2독서 - 로마 5,1-5

로마인들에게 보낸 이 서간은, 바오로가 자신이 설립하지 않았던 교회[회중(congregation)]에게 부쳐진, 바오로의 유일한 글이다. 이 서간은 회중에 의하여 제기된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지도 않으며 그리고 심지어 그리스도교 교리의 요약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이 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 안에서, 단지 유다인들 뿐만이 아니라(vice only the Jews), 이제 모든 인류에게 제공되는 구원(salvation)의 가능성에 대한 바오로의 선교 소견(missionary reflections)들을 제시한다. 바오로는 사람의 의화(justification)와 구원이 ‘율법에 기인하는 행위들(deeds of the law)’에 따라 결정되는(depend on) 것이 아니라, [이사악(Isaac)의 경우와 비교하였을 때에] 성부의 사랑이 아끼지 않으셨던(did not spare) 성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faith in Christ Jesus)에 따라 결정됨을 잘 인식하고 있다. 믿음을 통하여 사람은, 성부에 의하여 잉태되었으며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실현되었던, 구원 계획의 결과(effects)들에 참여한다. 오늘 우리는 바오로가 믿음(faith), 희망(hope), 그리고 사랑[charity(love)]으로 이루어진 향주덕[대신덕(theological virtues), 초자연덕]들에 대하여 넌지시 언급하는 것을 듣는다.

1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바오로는 인간들의 의화(justification, 의롭게 됨)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faith)을 통하여서임을 확립하기 위하여 로마서 1,16부터 4,25까지 할애한다. 이제 그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논하기 시작하는 중이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의화를 정의하는(define)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것은 과정으로, 이 과정에 의하여 죄인이 하느님 앞에서 의롭고, 순수하며 그리고 거룩하게 된다. 가톨릭 전통에 있어 의화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그리고 믿으라는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애정 있는 응답 안에서 선행들로 이루어진 삶 안에서, 발생한다. 고전적인 (개신교) 루터파 교리(classical Lutheran doctrine)에 반하여, 가톨릭 믿음(faith)은 선행들이 없는 믿음은 의화를 마땅히 받을 만하기에(merit)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선행들이 은총의 주도들에 기꺼이 협조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구원에 필요한 바는 외적으로 실천들을 통하여 그리고 내적으로 믿음을 통하여, 이들 둘 다를 통하여, 그 자체를 나타내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야고보서 2,24).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대신에 선행들을 실천함으로써 하늘에 한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는데, 선행들을 실천함으로써 하늘에 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은 펠라지우스 이단(Pelagian heresy)으로, 431년에 에페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에서 단죄되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자들 중에서만 구원받을 자들이 있으므로, 은총은 구원의 필요조건이다. 가톨릭 신자들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사이에서 의화에 대한 이해에 있어 가장 큰 차이점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 말이, 그리스도인들이 겪어야 하는, 평생에 걸친 과정, 즉 믿음과 함께 시작하여 살아 있는 동안에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하는 어떤 과정[a process, 즉, 성화(sanctification)]을 뜻한다고 받아들임에 있다.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이와는 달리, 의화를 당신께서 보실 때에 죄인이 의롭다고 간주된다는,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을 표시하는, 하느님의 외적인 선언(external pronouncement)이라고 받아들임에 있다. 이러한 시작 후에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지속시키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아무도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못하게 하자. ‘만약에 의화가 믿음으로부터 온다면, 어떻게 의화가 거저 주어질까? 만약에 믿음이 의화를 마땅히 얻게 할(merits) 만하다면, 왜 이것은 대가로 치러지는(paid) 것이라기보다는 주어지는 것일까?’ 열심 신자들이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하자. 왜냐하면, 만약에 열심 신자가 다음과 같이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따라서 나는 마땅히 의화를 받을 만하다.’라고 말하면, 그러면 그에게 다음과 같은 답변이 주어질 것이다: ‘그대가 받지 않았던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러므로, 만약에, 자신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데에 준하여, 믿음이 간청하여(entreats) 의화를 받는다면, 뒤를 따르기는 하되 앞서지는 아니하고, 함께하기는 하되 이끌지는 아니하는 의지(will)와 함께, 어떠한 인간적 덕목(human merit)도 하느님의 은총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은총 자체가 마땅히 인간적 덕목의 증가를 얻게 할 만하고(grace itself merits increase), 그리고 이러한 증가는 마땅히 완덕을 얻게 할 만하다(the increase merits perfection).”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417년), Letter to Paulinus of Nola, 186,3,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과 당신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로 만들어진다. 성찬례를 통하여, 즉 당신의 부활하신 성체(Body), 성혈(Blood),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혼(Soul) 및 신성(Divinity)을 통하여, 우리는 이 가족 식사에 참여하며 그리고 당신의 부활에 함께한다.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의화의 첫 효과는 평화이다. 화해가 관계의 소원을 원래대로 바꾸기 때문이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의화의 삶으로의 입문이다.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첫 번째 향주덕(the first theological virtue)인 믿음에 대하여 듣게 되었음에 주목하라.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의화의 두 번째 효과는 두 번째 향주덕인 희망이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의 근거로서의 하느님의 총애(Divine favor)는 심지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인간들을 분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환난(hardship)들에 직면하더라도 확신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하다(로마 8,35를 보라).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우리가 심지어 고통스럽게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즐거워할 수 있다면, 앞으로 올 일들이 얼마나 훌륭할 것인지를 생각하라. ... 고통(sufferings)들은, 이들이 인내(endurance)를 준비하게 하는 한,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aint John Chrysostom, 391년), Homilies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9].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희망은 환상(illusion)이 아닌데, 이는 이 희망이 인간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좌절된 희망에 의하여 결코 당황하게 되지 않을 것인데, 이는 인간의 희망은 속일 수 있으나 그러나 하느님에 기인하는 희망은 전혀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시편 25,19-22를 보라).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

성령의 선물은 이 부어짐에 대한 증거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이것의 매체(medium)이다.


복음 - 요한 16,12-15

부활 시기 전체에 걸쳐 우리의 복음 말씀 듣기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어졌던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으로부터였으며, 오늘도 다르지 않다. 그 설정은 위층 방(the upper room)에서의 최후의 만찬에서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이 구절에서 ‘영’은 요한 복음서 14,25-26에서 약속된 성령을 말한다. 심지어 지금, 당신의 공생활의 바로 끝 시기임에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것들 그리하여 성령의 교화시키는 행위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성령께서 이 공동체를 그쪽으로 인도하시는 이 ‘진리’는 이 복음서 다른 곳에서의 다음과 같은 ‘진리’와 꼭 같은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 하느님의 유일한 드러나심으로서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들을 말씀하시는 분으로서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요한 복음서 3,18.33; 8,40.47). 협조자(the Paraclete)께서는 이 공동체가 다음과 같은 요한 복음서 8,31-32의 명령(injunction)을 구현하는 것을 도우신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관련하여 당신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셨듯이(요한 복음서 12,49; 14,10을 보라) 마찬가지로 당신께서는 당신 자신과 관련하여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예견성 예언(predictive prophecy)은 성령의 역할 중의 일부분이다(사도행전 21,11을 보라). 협조자께서는 이 공동체가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에서 이미 약속되어졌던 모든 것들의 구현으로서 이해하도록 이끈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협조자의 역할은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며 그리고 성부께서 예수님께 주셨던 바를 취하여 이것을 제자들에게 선언하는 것이다.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가지고 계시며 그리고 결과적으로 성부께서 영광스럽게 되심인, 당신께서 영광스럽게 되심은(요한 복음서 12,23.28; 13,31), 그리스도의 위업을 계속하고 있는 성령의 행위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요한 복음서 14,13을 보라).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교회의 존재가 성부와 성자의 함께 하시는 삶의 결과이듯이(요한 복음서 3,35; 5,20; 10,30을 보라) 마찬가지로 이 교회의 지속은 성자와 성령의 함께 하시는 삶의 결과이다.


3분 복음/교리 묵상

33. 신경은 무엇인가?
185-188, 192, 197
신경은 신앙 조문들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서 ‘신앙 고백’ 또는 ‘크레도’(Credo - “저는 믿나이다.”)라고 불리기도 한다. 교회는 처음부터 모든 신앙인에게 규범적이고 공통의 언어인 조문들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요약해서 표현하고 전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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