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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꾸준한 묵상이 필요한 죽음의 신비

meili7405 (IP: 211.210.105.***) 2024.03.28 13:58:55 조회수 31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판매금액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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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월 28일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주기인 오늘.. 며칠 전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돌아가셨고.. 2주일 전에는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몇 년 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친척들의 별세 소식을 아주 자주 듣게 되고 장례식에 갈 일도 많아졌다. 그만큼 내가 나이 들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겠지 싶다. 그래서 선택한 이 책, <발타사르,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다> 죽음의 신비?! 마냥 부정적이고 나를 아프게 만드는 '죽음'의 '신비'라니? 결론적으로 안타깝지만 아직 온전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고 설득되지 못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책의 문제라기 보단, 아직 '주님과의 일치'가 되지 않은 탓, 인간으로서 나약한 인간으로서 현재 살아있는 순간 알 수 없는 '죽음'이 두려운 마음을 떨치기 어려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대목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고 성체성사와 고해성사가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해 죽음에서 생명을 살게 하는 성사라는 표현에서는 몸소 이해가 되었다. 몇 번의 고해성사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감사를 느꼈고, 성체성사를 하며 '영혼이 나은 듯'한 경험을 여럿 했기 때문이다. 얇디 얇은 책이라 쉽게 보았는데, 마음으로 온전히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복 독서와 꾸준한 미사봉헌, 성사생활이 필요해보인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 11, 25-26)" 죽음은 생명 전체가 모든 기능과 함께 정지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무'나 '절멸'이 아니다. 비록 생명이 정지된 상태를 상상할 수 없지만, 그것은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고 생명이 '자신을 선사해 주신' 하느님께 돌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하느님으로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과 같다. (중략) 죽음은 하느님께서 최고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지나간 삶의 공로나 허물을 없애지 않은 채 죽은 이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순간이다. pp.70~71 우리는 주님에 대한 희망과 사랑으로 죽음의 두려움에 충분히 맞설 수 있습니다. 죽음을 긍정적인 실재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과 깊이 일치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인에게 죽음은 자신을 '결정적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과 결합시키는 기쁨과 희망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죽음 속에서 인생의 모순을 넘어서는 참된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p.13 옮긴이의 말 중에서 만일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서 두려워 떤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지닌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 앞서 죽음의 의미를 바꾸기 위해 친히 죽음을 끌어안으신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한 개인으로서 우리와 함께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 이미 당신 자신 안에 우리의 죽음을 간직한 채 수난하고 돌아가셨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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