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고을 옹기장이, 이도기 바오로의 순교록
이도기는 충청도 정산 지역에서 살다 정사박해로 순교한 천주교 순교자다. 『정산일기』는 그의 생애를 소개하고 정사박해로 옥에 갇혀 순교하기까지 이도기의 약 1년에 걸친 삶과 죽음을 다룬다. 이 책은 교회사의 사료로서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 문학작품의 하나이다.
『정산일기』는 실제 일기가 아니다. 일기의 형식을 이용해 다른 사람이 이도기의 생애에 대해 쓴 작품이다. 저자를 알 수 없는 것은 이 작품의 단점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보다는 시대사적 배경 및 장르적 속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천주교 박해 시기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보다 한국 천주교회가 순교의 현장을 이야기, 그 중에서도 일기의 형식을 통해 기록화하고자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산일기』가 초기 순교자들의 수기를 기록한 글 중에서 유일하게 저자를 알 수 없었던 것은 책의 주인공인 이도기의 신분에서 유래한다. 이도기는 재산을 팔아 교우촌을 일군 도공이었다. 이 이름은 도가 일어나다라는 문자의 의미를 통해 이도기로 인해 정산 지역 천주교 공동체가 일어났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도기는 오지그릇을 뜻하는 말이기도 해서, 이도기 바오로는 이 씨 성의 옹기장이 바오로라는 의미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정사박해와 무명 순교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산일기』의 의미가 재구되어야 한다.
한국 천주교는 지식인 양반들의 학문에서 시작되었다. 학문에서 시작된 천주학이 차차 신앙으로, 그리고 양반만이 아닌 평민과 하층 계급 백성까지 포함하는 신앙공동체로 이어진다. 이러한 천주교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정사박해이기도 하다. 『정산일기』는 이를 배경으로 무명 순교자의 삶과 죽음을 통해 천주교인의 계층 확대와 천주교 신앙을 고취하고자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