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상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
사순 시기가 되면 우리는 십자가의 길 등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수님의 수난에서 절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때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이 순간에 마지막 말씀들을 남기셨다. 예수님이 죽음을 앞둔 중요한 순간에 남기신 말씀이기에, 이 말씀들을 특히 사순 시기에 묵상하면 더욱 깊이 의미를 새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도서는 거의 나와 있지 않다. 그리하여 이번에 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아우구스티노 신부)에서 이 말씀들을 주제로 한 《새롭게 보는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출간했다.
이 책은 저자의 체험과 묵상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일곱 말씀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에 관해 들려준다.
※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일곱 말씀[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도 함]
1.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2.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3.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4.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5. “목마르다.”(요한 19,28)
6.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7.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예수님의 일곱 말씀이 왜 새로운가?
전 도미니코회 총장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과 그 핵심 메시지
사실 예수님의 일곱 말씀은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 왔다면 익숙하게 들어왔을 것이기에, 특별하지 않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예수님 생애와 그분 말씀 자체에 대한 묵상을 해왔다면, 이 책은 저자가 성경 속에 계신 예수님을 현재 우리 곁으로 모셔와 지금 우리가 들어야 할 그분의 메시지와 함께 그분을 만나도록 안내하기에 새롭다.
이 책의 저자인 티모시 래드클리프 신부는 1992년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도미니코회 총장으로 임명되었고 2001년까지 총장직을 역임하면서, 르완다, 부룬디 등의 분쟁 지역이나 아이티 등의 가난한 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6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정의평화평의회 자문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에이즈 환자를 비롯하여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고, 그때의 체험과 묵상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다.
이러한 저자가 쓴 책이다 보니, 말씀에 대한 단순한 묵상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예를 들어,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으로 예수님이 이루신 공동체가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에서 성모 마리아와 요한 사도를 결합시킨다. 그러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친교’를 이루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처럼 저자는 각각의 말씀들을 각각의 메시지, 즉 ‘친교’, ‘사랑’, ‘행복’ 등으로 연결하여 그 말씀에 담긴 의미를 알려 줌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묵상과 미덕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매 장을 마칠 때마다 자신이 지닌 일곱 십자가를 소개하며, 예수님의 일곱 말씀과 연결하여 다양한 개성을 지닌 십자가들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이 주는 메시지를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시대를 꿰뚫어보도록 돕는 책
저자는 이 책의 끝부분에서, 현대에 일어난 큰 사건들을 언급한다. 바로 신대륙 발견 당시의 아메리카 정복, 유대인 대학살, 미국 9·11 테러인데, 모두 폭력적인 행위가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그 사건들은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사실 우리와 멀지 않다. 즉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인종 차별, 소외, 인권 문제 등이 가장 폭력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고 그 불씨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산재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건들 안에서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이 누구인지 살펴보고,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며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특히 다에시(IS) 테러 등으로 종교의 이름을 빙자한 폭력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난 요즘,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이러한 상황의 본질을 깨닫고, 유대인이나 무슬림과 같은 이방인들을 무조건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활을 통해 완성되는 생명의 말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기에, 유언으로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부활을 통해 완성되는 생명의 말씀이며, 지금도 살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이 생명의 말씀, 살아 있는 말씀인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삶의 지침으로 삼는다면, 갖가지 혼란이 계속되는 이 시대를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것은 무덤의 침묵이 영원히 깨졌음을 의미한다.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들어가는 말 중에서
본문 중에서
이제 나는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각각 묵상하면서, 여기에 더해 십자가를 하나씩 소개할 것이다. 내 방에는 십자가가 일곱 개 있는데, 각각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나타낸다. 그 십자가들 중 세 개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는 단순히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인심이 더 좋기 때문이 아니라, 중남미 대륙의 영성에 주님의 수난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21p ‘들어가는 말 ―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중에서
죄를 짓기도 전에 용서받는다는 말이 왠지 멋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잘못된 행위를 해도 상관없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언젠가 친구 부부가 나를 집에 초대한 일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어린 쌍둥이 자녀가 있었는데, 이 쌍둥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해 주는 것이 그들의 육아 방침이었다. 아이들이 물건을 부수거나 소리를 질러도, 2분마다 변덕을 부려도 친구 부부는 그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육아 방침으로 인해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28p ‘첫 번째 메시지 ― 용서’ 중에서
예수님께 낙원을 약속받은 착한 강도의 이름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견뎌 내는 이 형제들의 이름을 매일 볼 수 있다. 그들은 도미니코회의 회원으로서 교도소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도소 안팎의 사람들을 위해 나의 조언을 실천하고 있다. 내가 교도소를 떠날 때 그들은 종이 장미 200송이를 나에게 주었다. 총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한 송이씩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다. 그 장미는 행복에 대한 희망을 나누는 것을 의미했다.
48p ‘두 번째 메시지 ― 행복’ 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늘나라의 포도주보다 값비싼 포도주를 찾으며, 많은 돈을 벌거나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것에 대한 갈증만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갈망이라면, 우리는 그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원했기에 우물가로 갔고, 거기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우리가 우리의 작은 갈망을 솔직히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 갈망을 통해 예수님께로 인도될 것이다. 그리하여 더 많은 것에 대해 갈망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를 갈망하시는 하느님을 우리 또한 갈망하게 되는 법을 배울 것이다.
77p ‘다섯 번째 메시지 ― 갈망’ 중에서
나의 친구인 도미니코회의 앤서니 로스 신부는 강의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어느 날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의사가 그에게 앞으로 말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자, 그는 더듬거리며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의사는 할 말을 잃었다. 앤서니 신부가 애써 하려는 모든 말은 큰 고통과 승리의 열매였다. 내가 로마로 떠나기 전에 그는 나에게 단 한마디를 건넸다. “용기.” 그 말은 오랫동안 나에게 힘이 되었다.
114p ‘맺는 말 ― 무덤의 침묵을 깨고’ 중에서
특히 나는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통해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더 아름답고 진실 되게 전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다. 사실상 유대교는 그리스도교 문명 내에서 ‘다른 것’이었고, 이슬람교는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최근까지 그리스도교 문명 밖에서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두 종교는 우리가 그리스도교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132p ‘덧붙이는 말 ― 폭력이라는 벽을 넘어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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