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스스로 알 수 있는 인간의 생활, 윤리 및 목적에 대한 진리들을 실제로 인간의 힘만으로 정확하게 인식해서 표현한 사람은 역사 이래 아무도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가 있은 지 오래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을 헤매면서 “인생이란 수수께끼”라든가 “진리란 아무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소위 크리스찬들 가운데도 주어진 진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이른바 새로운 학설을 꾸며내거나 그런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외적으로 또 내적으로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또 그것을 전인류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 조명된 지능, 정화된 의지력 및 교회의 생활한 가르침의 도움으로 계시 안에서 올바르게 관찰하고 치밀하게 반성하고 정확하게 생활함으로써 확고부동한 생활관과 도덕률을 파악할 수 있음을 진지하게 깨우치고자 하는 바이다. 정말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자녀적 태도로 사람이 무엇인지,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이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생각하거나 또는 추리함으로써 그 사물을 포착함을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지능의 작용으로, 우리가 감각에서 포착한 사물의 모상의 도움으로 상상하고 추리한 끝에 “무엇이 있다” 또는 “무엇이 무엇이다”고 판단할 때에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다양한 지식, 즉 학문들을 크게 나눈다면 과학, 철학 그리고 신학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어떠한 학문이든 그것을 분석한다면 결국 이 세 가지 중 하나에로 각각 귀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즉 물체학이란 물질적인 사물들을 물질적인 것들로서 인식하는 것, 즉 물질적인 사물들의 현상 및 그 원칙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물은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된다” 등이겠다. 따라서 물체학이란 그 직무상으로는 물체적인 사물들의 성질과 물질적인 유익성을 탐구하고, 그 다음 형이상학, 즉 철학에 자료를 제공한다고 할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해서 자연과학은 우리의 의식주 등을 향상시킴으로써 직접적으로는 우리의 육신적 건강을 돕고 간접적으로는 우리 정신생활의 뒷받침이 된다고 할 것이다.

<철학>은 감각할 수 있는 사물들의 초감각적인 의미를 궁극적 원인들을 통해서 인식하고 탐구하는 학문으로 취급된다. 왜냐하면 철학, 즉 형이상학이란 자연계의 사물들에 대하여 물질적인 것 이외의 의미들을 탐구하는 학문인 것이다. 그런즉 철학이란 사람이 감각적 체험들에 대한 반성, 추리 및 판단을 통해서 자신과 사회의 정신적 건설을 위한, 물질을 초월하는 진리와 원칙을 찾고 발견하고 또 표현하는 학문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세상에 불완전한 존재들이 있으니 그들의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 원인은 무한하고 위격적이고 완전하고 또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체이어야 할 것이다. 즉, 그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고 섬겨야 하고 사랑해야 하는 창조주이어야 할 것이다” 따위겠다. 이와 같이 철학은 제일의적으로 또 직접으로는 사람의 지적 생활에 봉사하고, 그 다음으로 한편에서는 자연과학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 창조주 및 종교에 대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사람을 종교생활에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신학>은 사람이 지식력, 의지력 및 초자연적인 계시의 도움으로 구세적 신비들을 받아 누리며, 그 계시의 빛으로 본성의 진리도 쉽게 발견하고, 또 그것들을 그리스도의 신비체 건설에 도움이 되게 표현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신학은 믿음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서 믿음이라 함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1) 그것을 자녀적 태도에서2) 성령의 은총 안에서3)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지는, 이른바 애덕으로 유기화된 신덕을 말하는 것이다. 즉, 신비적인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순수한 지적 사색이나 계시용어들에서의 추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신비체내에서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어버이적이고 자녀적인 사랑으로써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4). 따라서 신학은 초자연적, 즉 은총의 학문으로서 그리고 자연과학과 인간철학을 포함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그것들을 비춰주고 또 사람과 만물의 최종목적에로 인도하는 학문이어야 할 것이다.

<주의>할 것은 크게 나눈 이 세 가지 학문의 노선을 잘 식별 함으로써, 결론함에 있어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을 피해야 할 것이다. 실지로 자연과학자가 물리적 경험에서 철학적인 또는 신학적인 결론을 내리거나, 철학자가 철학적인 깊은 이치를 과학적 경험에만 의존하거나, 혹은 신학자가 계시된 교리를 순수한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만 다룰 때에 혼란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 첫째 경우는 과학자가 철학을 침범함이 될 것이고, 둘째 경우는 철학자가 물리학에로 내려가는 것이 될 것이고, 셋째 경우는 초자연적 계시진리를 인간화함, 즉 인간적 테두리 내에서만 합리화시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물을 명백히 구분지어 생각하고 표현만 한다면 동시에 과학자도 철학자도 신학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하여간 모든 학문은 철학과 종교로 유기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욱 완벽하고 산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인간성 전체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고 또 모든 것을 자기와 인간사회의 완성 및 동시에 창조주께로 관련시켜서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는 종교론 또는 교희론을 총체적으로 논의하는 입장에서 크리스찬 인생관을 일원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따라서 먼저 그리스도의 계시가 받아들여져야 할 기반인 자연인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즉, 먼저 우리의 인생관을 크리스찬적인 것과는 초연한 입장에서 생각해 본 다음 그리스도의 계시적 구세사에 의한 크리스찬 인생관을 종합해서 기술하고, 마지막으로 사회적이고 단체적이고 건설도상에 있는 것으로서의 크리스찬이즘, 즉 교회론을 다루고자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