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본디 따뜻하다
김수환 추기경의 59년 만의 고향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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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김병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출간일
        2016-02-16
        그림/사진
        홍기한
        판형/면수
        127*188/반양장/184면
        ISBN
        978-89-321-1429-3 03230
        예상출고일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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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소개

          김수환 추기경의 59년 만의 귀향 감행기!

          “보통학교 5학년 마치고 떠난 뒤에 한 번도 못 가 봤으니······. 내가 사제품을 받아 신부가 된 뒤, 첫 부임지가 안동성당이었어. 볼일이 있을 때마다 버스 편으로 대구에 내왕했는데 늘 군위를 거쳐야 했지. 버스가 군위 정류장에 잠시 멈춰 선 동안에 늘 ‘내려 봐야지.’, ‘한번 내려야지.’ 하며 벼르기만 한 게 어저께 같은데 말이야.”
          -19쪽 ‘행운의 약속’ 중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오랜 소원은 사실 아주 소박했다. 새 신부가 되었을 때부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에 잠깐 들러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사제, 주교, 추기경이 된 후 그가 짊어진 의무와 책임 때문에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59년이 흐르고, 그 작은 소원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그것은 따뜻한 봄날에 고향으로 떠난 햇살 같은 여행이었다. 그 여행을 기록하여 책으로 펴낸 것이 바로 이 책 《봄날은 본디 따뜻하다》(가톨릭출판사, 사장 홍성학 신부)이다. 

          그분을 다시 만나는 기쁨!
          이 책은 김수환 추기경 선종 7주기를 맞아 23년 만에 공개되는 김수환 추기경의 고향 방문기다. 당시 귀향에 동행했던 김병규 작가는 김수환 추기경과 정채봉 작가와 함께 김 추기경의 생가가 있던 대구 남산동, 추기경이 성장한 군위읍, 그리고 추기경이 다니던 초등학교로 추억 여행을 떠났다. 당시 소년한국일보의 기자였던 김병규 작가는 그 여정 안에서 보고, 들은 것을 아주 세세한 것까지 메모하고 녹음하여 기록으로 남겨 둔 덕분에 당시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 이 책은 추기경의 말투와 몸짓, 차창 밖 풍경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마치 여정에 함께하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또한 이 작품을 구상할 무렵, 김병규 작가와 이 작품의 그림을 그린 홍기한 화백, 그리고 이 책을 담당한 편집자가 함께 군위를 찾아 김 추기경이 다녔던 길 그대로 하루 여행을 했다. 덕분에 김 작가는 좀 더 그때의 일을 기억해 낼 수 있었고, 홍 화백은 당시 설명을 듣고, 풍경을 눈에 담아 손에 잡힐 듯한 장면 장면을 그림으로 되살렸다.  
          한편 김 추기경이 그의 추억에 장소에서 직접 들려주는 옛 이야기들은 이전에 나온 김수환 추기경의 도서와는 달리 신선하게 다가온다. 싸움이 아닌 싸움 구경을 하다가 다친 수환의 상처, 조카와 싸워서 이긴 후에 미안하다고 엉엉 우는 모습, 천국에 가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왜 청국에 가야 하는지’ 궁금했던 엉뚱한 꼬마의 모습까지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던 모범생이자 똑똑한 추기경의 어린 시절이 아닌 의외로 평범한 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사제의 꿈을 키워 왔을 것만 같은 추기경이 자신은 사실 끝까지 사제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의외의 고백까지 하여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모두가 자신을 특별하다고 뽐내고 싶어 하는 요즘 시대에, 김 추기경은 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처음에는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봄날의 이 여행에 동참하다 보면 동네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김 추기경을 대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따르는 광경에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며 솔직하게 웃는 미소에서 평범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고 어느덧 김 추기경의 비범함을 깨닫고 그분을 더욱 존경하게 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과 김병규 작가, 정채봉 작가의 뜻밖의 만남
          1993년 3월 중순 어느 날 오전, 정채봉 작가와 김병규 작가(당시 소년한국일보 기자)가 김수환 추기경 집무실을 방문했다. 당시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꺼려하던 김수환 추기경이 ‘어린이를 위하는 일’이라는데 전적으로 동감해 <소년한국일보>의 ‘소년·소녀를 위한 현대 인물전’ 인터뷰에 응했던 것이다. 인터뷰 도중, 김 추기경과 같은 고향 출신이자 초등학교 후배인 김병규 작가가 즉흥적으로 군위 방문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김 추기경은 수행원도 없이 혼자 김 작가와 정 작가가 기다리고 있던 김포공항에 나타났다. 개인적인 방문이라 비서 신부도, 비서 수녀도 없이 혼자서 추기경 옷이 아닌 사제복 차림으로 등장한 모습에 두 사람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59년 만의 귀향에 동행한 이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자, 큰 선물이었다. 이 아름다운 봄날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도 꼭 전해 주고 싶었다.”
          -김병규 작가의 말

          처음에는 추기경에게 말을 걸기조차 어려워하던 김 작가와 정 작가는 추기경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서로 농담도 걸고, 자세한 이야기를 묻는 등 김 추기경과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제는 아파트촌이 되어 버린 생가가 있던 남산동을 아쉬워하고, 아이들이 있는 운동장에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다며 차를 세워서 걸어 들어간 일 등을 겪으며 김 추기경의 본모습에 더욱 쉽게 접근한다. 한편 김 추기경 역시 이들에게 고향집을 방문하여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형님을 그리워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을 그대로 우리가 전해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정 작가가 던지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질문들과 그걸 잘 기억했다가 기술해 둔 김 작가의 덕분이다. 어린이신문 편집장을 하면서 오랫동안 동화를 쓴 김병규 작가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59년 만의 귀향에 동행한 이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자, 큰 선물이었습니다. 오늘은 내가 만난 가장 따뜻한 봄날입니다.”라고 여행의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받은 큰 선물을, 이 아름다운 봄날의 여행을 독자들도 함께 느끼길 바라며 이 책을 쓴 것이다. 또한 이제는 세상에 없는 김수환 추기경과 정채봉 작가를 추모하는 마음 역시 이 책에 담겨 있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항상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대했던 두 사람의 모습이 이 책 속에 진하게 녹아 있다.  
           
          김 추기경의 59년 만의 첫 일탈! 
          김 추기경의 강론집이나 전기, 그리고 묵상집 등은 여러 출판사에서 많이 발간되었다. 그러나 김 추기경과 함께 여행하며 이분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은 최초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을 오롯이 다룬 책이 아님에도 그의 평범하고 소탈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된 것이다. 또한 김 추기경이 개인적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 추기경의 59년 만의 첫 일탈이랄까. 게다가 어린 시절을 지낸 고향을 방문해서였는지 김 추기경은 자신의 출생부터 부모님, 형님 신부님, 사제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 등을 함께 동행한 김병규 작가와 정채봉 작가에게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꾸밈없이 솔직한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과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김수환 추기경은 정의를 수호하신 분이자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 그리스도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추앙을 받은 참지도자였다.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의 어른다운 모습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김 추기경의 인간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더욱 친근감이 든다. 스스로를 싸움도 못하는 바보라 칭하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는 얼굴, 초등학교 후배들 앞에서 가슴이 벅차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며 떠는 모습 등까지 보인다. 이러한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을 보며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하던 김수환 추기경의 다른 면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구구단을 못 외워 잠자면서 익혔다는 일화와 주민등록번호를 외우지 못해 공항에서 겸연쩍어 하는 김 추기경의 귀여운 일면, 그리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느라 정작 자신이 해 보고 싶은 일은 스스로 먼저 포기하는 모습 등에서 어른으로서의 그의 넉넉한 인품과 함께 사소한 일조차 하지 못하는 그의 상황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 이런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존경해 마지않는 그의 생애와 말씀은 물론이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인간적인 모습을 알아가며 독자들은 울고 웃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구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기자가 김 추기경에게 주민 등록 번호를 물었다. 
          “어, 나 그것 못 외우는데.”
          그러면서 김 추기경은 겸언쩍어했다. 그 옛날 군위 보통학교 시절에 구구단을 못 외워 벌을 받을 적에도 저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174쪽 ‘구름에 가려도 태양은 태양’ 중에서

          작가의 말

          평범의 힘
          그 날(1993년 3월 31일)은 참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반세기 넘어 만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경북 군위군 군위읍을 찾은 날 말입니다.
          “추기경님께서 오시니 날씨가 이다지도 좋군요.”
          “이제야 제대로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이게 다 추기경님 덕분입니다.”
          김 추기경님은 곳곳에서 이런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럴 적마다 김 추기경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봄날은 본디 따뜻하지요. 어디 저 때문입니까.”
          넉넉히 인자한 얼굴로 허허 웃으며 한결같이 대답을 되풀이하셨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하신 말씀은 모두 순박하고 티 없고 성실한 내용뿐이었습니다. 들려주신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이렇게 평범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분께서 어찌 온 국민이 우러러보는 권위와 존경을 보여 주신 걸까요?
          그날 여행 중에 깨달은 것은 평범이 비범보다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군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즐겨 환호하며 반기는 모습에서, 저는 평범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런 김수환 추기경님의 평범한 모습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특별함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이 글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추기경님의 평범함을 온 국민이 더욱 존경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6년 1월, 저자 김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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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삶의 소중함을 담아 주신 분 
          그 누구나 잘 알듯 김수환 추기경님은 가톨릭 사제이자 추기경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가톨릭 신자들만을 위한 사제가 아닌, 누구나 존경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받들고 따르는 평범한 사람 김수환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김수환 추기경님의 꿈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장사를 배우고 돈을 벌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지요. 그런 꿈을 키우다가, “신부님이 되어라.” 하는 어머니 말씀에 그 평범한 꿈을 접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성무聖務로 시골길을 다니다, 어스름 저녁에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어린 시절의 꿈이 되살아나고는 했답니다. 
          추기경이라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한 것도 없었습니다. 학교 진도가 맞지 않아 그렇기는 했지만 낙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사람인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김수환 추기경님, 이런 분이 어떤 길을 걸었기에 우리는 그분을 존경하고 날이 갈수록 더 잊지 못하는 것일까요? 
          선종하기 전, 김 추기경님은 ‘알고 있는 것을 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오랜 시간은 그분을 알고 따르는 만큼 짧아질 것입니다.  
          《봄날은 본디 따뜻하다》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안팎을 옮겨 담으려 애쓴 책입니다. 가톨릭교회 추기경에 대한 글이라고 해서 “하느님이 어떻다든가, 성모님이 누구라든가, 성경이 무엇이라든가.” 하는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이 글을 쓴 김병규 형은 신문 기자이자 동화 작가였는데, 김 추기경님을 모시고 정채봉 형과 김 추기경님 옛집이 있는 군위를 다녀오며, 당시 그분을 보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누구에게나 있을 만한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훗날 김병규 형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김 형, 그때 김 추기경님을 모시고 군의를 다닐 때는 ‘이렇게 평범한 분이 어떻게 가톨릭교회의 수장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의 그 평범함이 평범한 것이 아니었어. 평범이 아니고 비범이라고.” 
          정말이지 기자와 작가의 안목으로 김 추기경님을 간단명료하게 잘 나타낸 말입니다.    
          “난 말썽도 못 부리는 아이였어. 순하다고 집에선 ‘순한이’라고 불렀다니까. 어리석을 만큼, 바보처럼 순했어.”
          김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수환이가 또래 외조카에게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둘은 싸움이 붙어 뒤엉켜 몇 바퀴 뒹굴었습니다. 이내 조카가 졌다며 두 손을 들었습니다. 
          “외삼촌, 내가 잘못했어.”
          조카는 슬그머니 일어나 흙먼지를 털며 주뼛주뼛 외삼촌인 김 추기경님을 넘어다보았습니다. 이때 조카는 흠칫 놀랐습니다. 외삼촌이 돌아앉아 쪼그린 채 훌쩍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습니다.
          “외삼촌, 무슨 일이야? 이겨 놓고 왜 울어?”
          “…… 참 이상해. 너를 이겼어도 마음이 안됐어.”
          “삼촌, 바보야! 이기고도 울다니? 항복한 나도 안 우는데.”
          “그래, 난 바보인가 봐. 다시는 누구하고도 안 싸울 거야.”
          김 추기경님은 어느 누구를 이기려고 한 일이 없습니다. 더 좋은 자리를 욕심 내지도 않았습니다. 이 말은 영광과 성공을 좆으려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높은 자리를 욕심내지 않았으나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또 김수환 추기경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하며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를 바랐습니다. 아니, 낮은 자리로 가서 그네들과 몸과 몸을 또 마음과 마음을 부딪쳤습니다. 이렇듯 참다운 지도자가 없는 요즘 김수환 추기경님이야 말로 우리 삶에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마음속에 담아 주신 분입니다.
          동화 작가 김원석 


          본문 중에서

          김 추기경은 정 작가와 악수를 나누었고, 이어서 기자의 차례가 되었다. 
          “김 기자라 했지? 수고했어요.”
          “추기경님, 사실은 제가 군위국민학교(현 군위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추기경님의 후배지요.”
          그 순간 김 추기경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기자의 손을 꽉 잡았다.
          “뭐라고? 내 국민학교 후배라고!”
          “예, 그렇습니다.”
          “이런 반가운 일이 있나, 글쎄! 그동안 숱한 사람을 만났지만 군위국민학교 후배는 처음이야.”
          김 추기경은 한 팔로 내 어깨를 감싸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광경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정 작가가 “추기경님, 저희랑 군위에 다녀오시지요.”라고, 의표를 찌르는 제안을 한 것이다.
          “제가 잘 안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10년 동안 교편도 잡았습니다. 군위 사람들은 추기경님께서 군위국교를 다니신 것에 큰 긍지를 갖고 있답니다.”
          기자가 또 이렇게 거들었더니, 김 추기경은 털썩 약속을 하고 말았다. 

           -28~30쪽 ‘행운의 약속’ 중에서

          평소에 싸움 말리는 일에나 나서지, 말다툼도 하지 않던 수환이 단단히 화가 났다. 둘이 뒤엉켜 넘어지더니, 몇 바퀴 뒹굴었다. 어느새 삼촌이 위로 올라왔고, 조카가 두 손을 들었다. 
          “외삼촌, 내가 잘못했어.”
          슬그머니 일어나 흙먼지를 툭툭 털던 조카는 주뼛주뼛 외삼촌을 넘어다보았다. 그러다가 흠칫 놀랐다. 웃고 있을 줄 알았던 외삼촌이 돌아앉아 쪼그린 채 훌쩍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야? 이겨 놓고 왜 울어?”
          “이상하네. 이겨도 마음이 안됐어.”
          “넌 바보야! 이기고도 울다니. 밑에 깔려 항복한 나도 안 우는데.”
          “그래, 난 바보인가 봐. 다시는 누구하고도 안 싸울 거야.”
          수환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는 서쪽 하늘로 설핏 기울고 있었다. 아직 어머니가 돌아올 때는 멀었다. 

          -46~47쪽 ‘이기고도 우는 바보’ 중에서

          김 추기경이 운동장에 나서자, 아이들이 와 달려들어 김 추기경을 에워쌌다. 몇몇 아이는 김 추기경의 손을 잡고, 둘레의 아이들은 그를 우러러보며, 멀찍이 떨어진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보려고 펄쩍펄쩍 뛰며 교문 쪽으로 움직였다. 큰 소년인 김 추기경은 한없이 인자한 표정을 지은 채 어떤 기류에 휩싸여 흘러가듯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위로 봄 햇살이 쏟아지고, 또 뿌려지고 있었다.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은 행렬이었다.
          교직원과 지방 유지와 주민들은 감히 그 행렬에 끼어들려 하지 않고 멀리서 손만 흔들고 있었다.

          -76쪽 ‘소년으로 되돌아간 추기경’ 중에서

          “어, 그대로야! 바로 이 집이야!”
          김 추기경은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돌로 엉성하고 얕게 쌓은 뜰은 흉내만 냈고, 그 뜰만큼 좁은 툇마루가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부엌과 방 두 칸의 삼 칸 집이었다. 세월에 창호지가 반쯤 찢겨져 나간 문들은 앙상한 문살을 드러낸 채 말이 없었다. 툇마루 위에는 지게, 쇠스랑 따위의 농기구가 널브러졌고, 그 앞엔 철제 사다리가 거꾸로 눕혀져 있었다. 집 왼쪽에 쌓아 놓은 볏짚 더미 위엔 허연 비닐이 덮였으며, 마당 여기저기에도 뭔지 알 수 없지만 무덕무덕 비닐에 덮여 있었다. 그 집 뒤엔 해묵은 감나무 두 그루가 섰는데, 아직 잎이 돋지 않아 앙상했다.

          -101~102쪽 ‘용대리는 살아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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