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길의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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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유장근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출간일
        2012-04-02
        그림/사진
        이윤순 사진
        판형/면수
        140*205/반양장/348면
        예상출고일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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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세설명
        • 소울메이트를 갈망하는 이들을 위한 책

          오십 대에 소울메이트가 되다!

          이 책은 오십 대 부부가 함께 산티아고로 순례를 떠나, 그곳에서 소울메이트가 되어 삶의 현장에 돌아온 특별한 이야기다. 하루가 멀다하게 유명인의 이혼 기사를 보게 되는 요즘, 삼십 년을 함께해 더 이상의 설렘도 새로움도 없을 것 같은 중년 부부가 함께 한 달이 넘는 순례를 다녀와 “우리는 그 길에서 드디어 소울메이트가 되었다!”라고 하니, 이들 부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산티아고가 뭔지도 몰랐던 신앙 새내기 저자는 산티아고에 가자는 아내의 말에 “뭐? 800킬로미터를 걸어? 미쳤어?”라고 말한다. 그랬던 그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께 여행을 가면 다투게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마저 뿌리치고 아내와 함께 그 길을 걷게 된 것은 차라리 ‘섭리’였다고 하겠다. 이들은 24시간을 꼬박 함께 있어야 하는 그 길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부부간의 사랑이라는 화두와 같은 묵상 주제로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그 열매는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어 가는 법을 구체적으로 터득한 것이리라.

          부부가 함께 만든 공동 작업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의 재무 분야에서 일했던 저자는 한 번도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살아 온 삶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산티아고 순례의 감동이 너무나 커서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 되어 생애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순례를 하는 내내 매일 매일 꼼꼼히 메모한 덕분에,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에는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메모하는 남편 옆에서 아내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 ‘부부가 하나가 되듯이’ 공동 작품 《산티아고 길의 소울메이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두 가지 표지를 동시에!

          이 책은 두 가지 표지를 동시에 만나 볼 수 있다. 전혀 다른 두 얼굴의 표지를 내놓는 것은 독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으로, 가톨릭출판사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설렘이 더 잘 표현된 보다 생동감 넘치는 표지와, 깊은 명상과 부부의 사랑의 일치가 감성적으로 잘 드러나는 보다 편안한 느낌의 표지 2종을 동시에 만들었다.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표지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사랑의 묘약 만들어 가기

          세례를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산티아고에 가기로 결심한 저자는 길 위에서 묵상을 통해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새삼 느끼고 고백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도 전에 하느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았다고.

          우리는 이번 카미노 내내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고통 속에서조차 깨달음을 통해 그 고통을 치유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 생각한 하느님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인가를 알고자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도 전에 하느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있을 때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무엇에나 항상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자체가 모두 하느님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300쪽, ‘드디어 산티아고로!, 카미노 33일’)

          이 부부는 산티아고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나이가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모습이 다르고, 참여 동기가 다르고, 또 생각이 다르지만, 함께 길을 걸어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게 되고, 사랑을 받으면 또 사랑을 주게 된다.

          곧 알베르게 문이 열렸다. 그런데 우리 앞에 있는 배낭 주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등록하려는데 노부부인 듯 보이는 배낭 주인들이 막 들어왔다. 당연히 먼저 등록하라고 양보하는데 도리어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먼저 등록하라고 했다. 만일 내가 순서를 놓쳤다면 저렇게 양보할 수 있었을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와는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내 발가락 물집이 터진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워하며, 소독하라면서 가지고 있는 알코올을 건네주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된다. 나는 언제쯤 저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106~107쪽, ‘발가락 수난 시대, 카미노 7일’)

          오십 대에 하루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남편은 간 큰 남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오십 대가 되면 대부분의 부부는 함께하기보다 따로따로 자유를 더 갈망하게 된다. 그런 오십 대에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힘든 여정을 걷다 보면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고 해도 다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 고통의 시간을 서로 사랑을 굳건히 하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었다.

          아내 생각하느라 내 무게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조금 가다가 아내가 한마디 했다. “괜찮아요?”
          아내의 사랑이 느껴졌다. 아내를 위한 나의 희생을 아내가 알아주는 것 같아 행복감이 밀려 왔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니 신기하다. 이런 정도의 다정함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있었는데, 그때는 못 느꼈던 감정이 여기에서는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사랑은 멀리 있거나 실천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찾아 행동할 수 있는 것이리라. 상대의 노고를 알아주고 그것을 표현해 주는 것.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그게 평소에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갑자기 힘이 났다. 사랑은 힘을 내게 하는 묘약이라던가? 풀밭에 핀 야생화들이 한결 예뻐 보였다.        (53~54쪽, ‘부엔 카미노, 카미노 1일’)

          인생의 소울메이트를 찾고 있는가?

          지금은 형편이 되지 않아 산티아고 순례를 감히 꿈꿀 수 없지만, 미래에는 남편이나 아내 혹은 친구나 동료와 함께 이 길을 걷기를 꿈꾸는가? 이 책은 당장 산티아고로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미래에 그 길을 걷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로 인생의 여정을 걸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 서로에게 소울메이트가 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인생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들 부부처럼 이렇게 외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본문 중에서

          ‘카미노는 오랜 시간을 걷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걸을까?’
          우리는 카미노를 걷는 동안 무언가 생각해 볼 주제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그것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부부 사랑’으로 결정했다.
          (33~34쪽, ‘카미노에서 사랑 배우기’)

          어제 아내는 내 발을 걱정하며, “내일은 짐을 택시로 보내고 맨몸으로 걸어요. 그러면 발에 부담이 줄어서 발이 좀 더 빨리 나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했다. 나도 사실 그 말에 솔깃했다. 그런데 오늘 이 캐나다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하게 되었다. 나는 카미노가 하느님의 뜻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지금의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을 대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은 분명히 삶의 일부분일 것이고, 시간적으로도 일생에 비하면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친 때에는 마치 전 생애가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고,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면 일생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어렵지 않고 좋은 면이 더 많고, 지금 잠시 어려울 뿐이지 앞으로 다시 좋은 시기가 오리라는 것을 믿으며 그 어려움에 대처해야 쉽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믿으면, 하느님은 분명 내게 힘을 주실 거라고 생각한다. 
          (154~155쪽, ‘고통도 카미노의 일부, 카미노 13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건 하느님의 뜻이 아닌가 싶다. 더 갈 수 있는 길을 가지 않고 여기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며, 성당에서 신부님, 그것도 베네딕도 수도회 신부님을 만난 것이며, 신부님이 한눈에 선뜻 나를 독서자로 지명하시고 내가 신부님 요청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 것 하나하나가 그리 쉽게 이루어질 일들은 아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마치 사전에 짜여져 있었던 것처럼 일순간에 거리낌 없이 진행되었다.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설레는 기분이었다. 아내도 좋아했다.
          (233쪽, ‘하느님의 이끄심을 느끼다, 카미노 24일’)

          폰세바돈 마을을 지나는데 세찬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바람 속에 우비를 입고 언덕을 올라 철 십자가에 도착했다. 고도 1,505m란다. 높은 기둥 위에 작은 십자가가 올라 서 있다. 카미노 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십자가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돌무더기가 되어 철 십자가를 둘러싸고 있다. 어떤 젊은 청년은 빗속에서도 철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기도했다. 우리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기도문과 우리의 기도를 담은 돌을 철 십자가 밑에 두고 기도했다.
          “주님, 이 길을 걸어가는 저희 부부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고 저희 부부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힘을 주소서. 또한 여기 묻는 모든 분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241쪽, ‘기도문을 묻다, 카미노 25일’)

          우리 부부는 이번 카미노를 통해 많은 시간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더 가까워지고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그러나 지금의 좋은 이 관계가 앞으로도 똑같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 상태를 잘 유지하려면 사소한 일에서부터 서로가 이해하려고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사실을 안다. 우리 부부는 이번 카미노에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서로 아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배웠다. 앞으로도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로서, 계속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254쪽, ‘부부 사랑, 그 소중함에 대하여, 카미노 26일’)

          길가에 핀 민들레꽃이 바닥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아내는 여기 길가에서도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 오늘은 그렇게 찾은 네 잎 클로버를 아예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부엔 카미노!” 인사와 함께 나눠 주었다. 오늘 네 잎 클로버를 준 사람만 해도 6명은 되나 보다. 다들 좋아했다. 순수함은 어디서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이 그리 어렵고 먼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263~264쪽,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카미노 28일’)

          안으로 들어가는데 정문 옆에 붙어 있는 쪽지의 문구가 나를 멈추게 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 안에서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To be a Christian is to try to imitate Jesus within our own limitations.’
          한참을 서서 문구의 의미에 대해 되새겼다. 나는 세례를 받는 순간 바로 신앙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신앙인으로서의 내 생활은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물론 과거에 하지 않던 새벽 미사와 주일 미사에 참례하거나 성경 공부를 했지만, 그런 것들이 내 생활을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생활에 변화가 없다면 신앙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러웠고, 도대체 어떤 모습이 신앙인의 자세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문구를 접하고서야 신앙인이 무엇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삶의 기준을 예수님에게 두고 예수님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이라는 것, 즉 신앙인이라고 해서 별다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항상 신앙을 가치의 표준으로 삼고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문구였다.
          (266~267쪽,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카미노 28일’)

          카미노 생활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초라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카미노는 신앙에 관한 생각, 삶에 관한 생각, 나라는 존재에 관한 생각, 나와 남의 관계에 관한 생각 등 무수히 많은 것을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유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분명히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결국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빈부, 애환, 성패 등의 기준 즉 ‘어떻게 사느냐?’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존재, 즉 내가 살아 있음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느껴졌고 저절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드리게 되었다.
          (312~313쪽, ‘다시 삶을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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