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약속》
      • 2018-09-03 10:44:03
      • CRM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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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바다에서 표류한다면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조너선 모리스 신부, 고통을 풀어갈 수 있는 삶의 원칙과 실천 방법 제시


    뉴스는 연일 각종 사건 사고를 보도한다. 육체적 병고와 정신 질환, 죽음과 이별, 가난과 빈곤. 지구 곳곳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끔찍한 재해와 사고들. 고통은 인류의 숙제일까, 아니면 신이 어쩌지 못하는 악마의 농간일까. 그럴 때마다 ‘하느님은 계시긴 한 걸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인간 이성은 ‘하느님 뜻’을 다 헤아리기 어렵다.

    미국 뉴욕대교구 사제인 저자 조너선 모리스 신부는 폭스 뉴스 해설자로 활동했다. 어느 날 쓰나미와 지진으로 아시아에서 37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앵커가 갑자기 저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한꺼번에 발생한 죽음과 파괴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신이 화가 났나요?” 그러나 사제인 그도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이를 두고두고 고민한 저자가 이에 대한 답을 쓴 책이다. 여러 서적을 우리말로 옮겨온 가톨릭평화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이창훈(알폰소) 위원이 번역했다.

    저자는 다소 철학적일 수 있는 주제 ‘고통의 근거’를 쉽게 풀어냈다. 저자 주변인들의 다양한 고통 체험에 교회가 전하는 진리를 잘 접목해 고통을 새롭게 마주하고 풀어갈 수 있는 ‘삶의 원칙’과 ‘실천 방법’을 엮었다. 

    고통에는 세 가지 얼굴이 있다. 육체적ㆍ정서적ㆍ영적 고통. 우리는 각자 고통의 실체를 잘 살피지 못하거나, 하느님과 멀어지는 ‘영적 손상’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돌아볼 것이 있다. ‘나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 우린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들어주는 ‘자판기 하느님’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일에 그저 분노하는 ‘심판자 하느님’으로 여기진 않는가.

    저자는 “주님은 철학이 아니며 도덕률도 아니다”라며 “그분은 우리가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살아계신 분”이라고 일러준다.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의 기준’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그 고통과 함께하는 분이란 것이다.

    성경을 좋은 영감을 주는 ‘낱장 달력’쯤으로 여기거나, 이성으로 납득이 될 때에만 ‘찬양’한다면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신뢰할 수 없다. 무신론자나 비신자들이 갖는 ‘1단계적 하느님 인식’을 넘어야 한다. 저자는 성경에 대한 ‘학문적 이해’, ‘인간 이성’ 너머에 있는 ‘살아 계신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고통 속에 함께해주시는 분’이라고 설명한다. 그 근거가 인간의 고통을 모두 짊어지고 하늘나라로 오른 아들 예수님이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통해 더 큰 선(善)을 가져다주셨다. 고통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여기고, ‘왜 하느님이 해결해주지 않느냐’고 조급해 하는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다.

    해법은 ‘삶의 거룩화 작업’이다.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기에 ‘완전한 사랑이신 분’을 사랑하도록 영혼을 인도하는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각자가 지닌 ‘뿌리가 되는 죄’를 파악하고, 이와 반대되는 ‘선한 행위’들을 삶의 목표로 세워 실천하도록 이끈다. 하느님께서 ‘더 큰 선’을 주신다는 약속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될 우리 행동의 뿌리 역할을 한다. 고통은 아프지만,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다.

    평화신문 9월 2일자